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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곤충이로소이다
>나는 파리다. 사람들은 나를 혐오하고 더럽다고 손을 휘저으며 쫓아내지만, 나는 사건이 있는 곳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첫 번째 목격자다.
인간들은 나를 하찮게 여기는거 같다만, 감식반과 수사관들은 내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하여 사건의 단서를 찾으려고 애쓴다. 내가 본 것, 내가 남긴 것, 그리고 내 동료들이 한 행동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결정적 증거가 된다. 우리는 정말 대단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의 첫 번째 목격자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은 나와 나의 동료들이다. 인간들은 이를 법곤충학이라 부르며,우리가 언제 도착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연구한다. 우리는 단순히 혐오스런 곤충이 아니라, 죽은 자의 마지막에 증거를 남겨 보존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인간들은 종종 우리를 통해 사망 시간을 추정한다. 내 친구인 검정파리(Calliphoridae)는 부패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즉시 도착하고, 나는 그보다 조금 늦게 합류한다. 우리 유충의 성장 속도를 보면, 죽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다.
사망 장소를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졌더라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은 도시지만, 숲 속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만약 도심 곤충이 한적한 숲에서 발견된다면, 사체가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죽음을 해석하는 곤충들
우리 곤충 세계에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다. 나 또한 단순한 초파리가 아니라, 수사관이며 법의학자다. 각 곤충은 특정한 시기와 환경에서 나타나므로, 우리의 존재만으로도 사망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1차 해부학자: 파리와 구더기
시신이 발견되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친구들이 있다. 검정파리와 집파리는 생존을 위해 재빨리 시신에 접근하고, 인간들은 이 유충의 크기와 성장 단계를 분석하여, 사망 후 경과 시간(PMI)을 추정한다.
2차 감식관: 딱정벌레와 송장벌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임무를 이어받는 친구들이 있다. 송장벌레(Nicrophorus)는 시체를 땅속에 묻으며 새로운 생명을 키운다. 그들이 나타난 시점을 통해, 시체가 얼마나 오래 방치되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송장벌레는 사체에서 다른 곤충들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 번식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이를 통해 사망 당시의 환경적 요소를 분석할 수 있다.
3차 증거 수집자: 개미와 거미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개미와 거미 같은 곤충들이다. 이들은 시신을 완전히 분해하는 과정에 참여하며, 인간들은 이들을 통해 부패 단계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분석한다.
개미는 종종 작은 사체 조각을 물어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하는데, 이것이 법의학적 증거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간들의 범죄, 우리는 알고 있다. 완전 범죄는 없다
살아가면서 서로 해치는 나쁜 인간들이 많다. 이 정도면 지구에서 주인인양 행사하는 게 꼴 보기 싫을 정도다. 흉기를 사용하거나 독살을 하거나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거나, 인간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들의 흔적은 항상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발견하는 자들이다.
피가 마르고 썩어가는 동안, 우리는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증거를 남긴다.
우리는 진실이 묻힌 땅을 헤집는다. 송장벌레는 인간이 몰래 묻어둔 시신을 찾아 땅을 파헤친다. 그들의 존재는 인간이 숨기고 싶어 하는 것들을 세상 밖으로 드러낸다.
그 어떤 인간도 완전 범죄를 저지를 수 없으며, 우리가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기록하고, 그들의 흔적을 해석하며, 때때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거짓을 간파할 수 있다. 인간은 시신을 이동시키고 증거를 없애려 하지만, 우리는 어디서든 진실을 찾아낸다. 도심 곤충이 숲에서 발견되는 순간, 인간의 거짓말은 무너진다.
내게는 법도 없고 도덕도 없다. 나는 본능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러나 그 본능이 인간들에게 중요한 단서를 남긴다. 인간들은 나를 통해 숨겨진 진실을 밝혀낸다. 나는 그저 살고, 먹고, 번식하지만, 나의 흔적은 죽음과 생명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록이 된다.
사건 파일: 사체는 진실을 말한다
어느 날, 한 사체가 숲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인간들은 사망 시간을 알아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파리 유충들은 사망 후 48시간이 지나야 성장하는데, 사체에서 발견된 유충의 크기는 72시간 이상이 지난 것이었다. 인간들이 놓친 단서가 드러나면서 결국, 인간들은 우리가 남긴 증거를 바탕으로 범죄 현장의 조작을 밝혀냈다.
우리는 인간보다 더 오래 이 땅을 지켜왔다. 우리는 죽음을 해석하는 존재이며, 인간이 모르는 진실을 증언하는 존재이다. 인간들은 우리를 연구하며 사망 시간을 추정하고, 사망 장소를 특정하며, 범죄의 단서를 찾아낸다.
법곤충학은 단순히 곤충을 연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곤충이 말하는 진실을 듣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것은 인간에게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리는 인간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수사관이자, 침묵 속에서 가장 많은 것을 말하는 존재들이다. 다음에 우리가 나타나면,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죽은 자들의 목소리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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